다름이 아니라 트라우마에서 시작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에 대해 말하기가 몹시 어렵다. 이제 막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힘이 센 것들이어서 내가 쫀건지. 여러 의미가 가능해서 어려운 단어는 확실히 아니다. 나는 그 단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그 단어는 어느 순간 마치 이미 내 안에 있었다.


















그러나 내가 L을 만나면서 쌓여온 시간들로 인해 그 사람을 통하여-정말 나의 시선이 그 사람을 통과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다고 말한다면 ‘트라우마’는 그 깨달음의 이름이자 제목이 될 수 있는데, 트라우마를 두고 내가 L과 겪은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또다시 넋두리이고 예시일 뿐이다.


















사건 이후에 단어가 오고 글이 오고 사진이 오고
사진은 글과 분리되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다시 글이 온다.
단어 이후에 텍스트, 문장 이후에 단락, 단락 이후에 단어,
문서 이후에 발화, 발화 이후에 문서






















사람을 가장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자연의 피할 길 없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므로, 브라운은 파멸을 이겨낸 것들에서 비밀스러운 환생능력의 흔적을, 그가 애벌레와 나방에서 자주 관찰할 수 있었던 환생 능력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W.G. 제발트 ‹토성의 고리›
















한문장으로 말하자면 나는 단어가 환생하는 순간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건 애벌레에서 나방이 되는 것 같은 환생의 시각적 움직임을 갖고 있지 않아서 무엇을 포착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누에가 누에나방이 되는 과정에서 그는 몇차례의 탈피를 거친다. 누에는 전생애를 걸쳐 넉잠을 자는데 자는 동안에 새로운 피부를 만들며 일어남과 동시에 탈피를 한다. 그의 잠버릇은 입에서 실을 뽑아 배발을 고정시키고 머리를 약간 들어올린 채로 반나절에서 하루를 잔다. 대략 24일에 거쳐 성장한 누에는 탈피와 뽕잎먹기를 중단하고 토사구에서 실을 토해 고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고치는 ∞자로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짓고 고치짓기를 마친 누에는 고치 속에서 번데기로 변한다. 고치 속에서 누에나방으로 변한 번데기는 고치 밖으로 나오기 위해 입에서 알칼리성 액체를 분비해 고치의 조직인 벽면을 부드럽게 만들어 구멍을 뚫어 세상으로 나온다. 그렇게 누에는 누에나방이 된다. 몸을 탈피하여 환생한다.



















무한대(∞)의 모양으로 고갯짓을 하면서 고치알을 만드는 그 장면은 상상만 해도 너무나 흥미롭다. 매일같이 머리 속에서 그 장면을 재생시킨다. 누에는 환생을 준비하기 위한 몸짓으로 ∞를 허공에 그리며 자신의 고갯짓을 인정하고 그것이 정말 자신으로부터 나온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이 있을까. 무엇이 얼마만큼 흐르는 것인지 혹은 한없이 유예되는 것인지























일단 트라우마를 시작으로 L과 끝말잇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에 앞서 전화통화 초반에 몇가지 이야기들을 했는데 이야기 중 하나를 꺼내자면 이렇다.




나는 총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 만져본 적도 없고. 총의 생김새보다 총소리가 더 익숙해. 어떻게 생겼는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데 말로 설명해줄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군 복무 당시 가장 흔하게 사용했던 m16 소총의 부품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읊으며 그것의 위치와 모양을 나에게 설명해줬다. 총신은 원통형의 모양으로 맨 앞에 위치하고 그다음에는 왼손을 받칠 수 있는 모양의 덮개가 아래에 부착되어 있으며 그 뒤에 탄창이 있고 탄창은 바나나처럼 휘어서 두께감이 있는 형태이다. 방아쇠가 바로 뒤에 있다. 총의 맨 아랫부분에는 오른쪽 어깨를 대는 개머리판이 있는데 직각삼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고 땅을 향하는 밑바닥의 모양은 그렇게 넓적하지 않다. 총의 길이는 대략 성인의 중지 손가락에서부터 팔꿈치가 접히는 곳을 조금 넘는 길이이다. 그 말을 듣고 총을 그렸고 이후에 구글링을 통해 나의 총 드로잉의 구조적 오류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자꾸만 총을 그리면 똑같은 오류를 반복한다. 오류를 없애기 위해서는 아마 직접 총을 들고 뭐라도 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내가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익숙하게 기억하는 총성에서도 청각적 오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비단으로 치뤄진 여러 전쟁들을 생각해보면 총성의 오류는 비단을 통과할 때 생각보다 감미로울 수 있을까. 비단은 중국과 몽골에서 전쟁 시 갑옷 안에 입어 갑옷의 방어력을 높이는 일종의 보호복으로도 사용되었고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기까지 -나일론의 개발 이전까지- 전쟁용 실크 낙하산으로 제작되었다. 그들은 고치 속 번데기가 누에나방이 되기 전에 고치를 탈취하여 끓인다. 그렇게 익혀진 번데기와 고치집을 분리시켜 고치에서 비단실을 뽑아낸다. 그렇게 누에는 비단이 된다. 숨이 끊어진 환생이다. 그는 몸을 익사시켜 탈태한다.


누에를 죽여 환생시킨 비단으로 다시 많은 목숨들이 죽고 어디선가 또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L은 전쟁과 역사에 대해 자주 언급하지는 않지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전쟁과 혁명의 사건들로 점철되는 세계사의 역사책처럼, 많은 사료를 동반하는 글쓰기는 어떤 때는 모든 것이 구조적으로 완벽해 보이다가 부지불식간에 의아한 느낌이 찾아온다. 개인의 역사도-흔히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매끄럽다가 또다시 서로 맞지 않는 돌기처럼 작동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모든 것이 오류고 착각이 되어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나를 글쓰게 만든다. 속해 있는 종교가 없기에 더더욱 그래서 모든 종교의 의례를 신성시하고 어딘가에 신이 있는 것처럼 최대한 바르게 행동하며 사는 것과 비슷하게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트라우마적 망상에서 시작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글을 쓴다.





















현상의 인간적 의미나 역사의 연속적 생성은 겉보기뿐임에 불과하며, 과학적 분석은 그것들을 해체하여 그 바닥에 간직된 비인간적 구조, 비연속적 체계를 명백하게 드러내야 한다.—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그렇다고 내가 마치 구조주의자처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와의 끝말잇기를 시작했다.